1. 건축사를 공부하며
건축(建築, architecture)이라는 용어는 세울 건, 쌓을 축으로, 전통 시대에는 없었던 용어이다.
이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에서 들어온 단어인데, 이전에는 조가(造家)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건축사를 공부할 때는 염두에 두어야할 점이 있는데, 바로 일상적인 건축(domestic)과 기념비적 건축(monumental)을 구분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기념비적 건축물만 생각하기 쉬운데,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존재했던 일상적인 건축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2. 건축의 시작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무엇이 건축인가?'를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여러 건축가와 학자에 의견에 따르면 건축의 시작, 혹은 건축의 조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조건은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장식은 배제된 상태이다. 근대 기능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으며 monumentality가 중요하지 않고 domestic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의견에 따르면 장식은 없지만 shelter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원시 오두막은 그 자체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간의 형성이 건축의 조건이라는 의견이다. 근대 공간주의, 유기주의자에 의해 주장된다. 이들은 다른 예술의 요소와 건축의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했으며, 그것을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조각과 건물의 차이는, '건물은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정한 건축은 로마 건축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구조체를 만드는 것은 사실 그 안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따라서 공간의 형성이 건축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 의견에 따르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은 건축이 아닌 조각에 가깝다. 피라미드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므로, 진정한 공간을 형성했다고 할 수 없어 건축이라고 할 수 없다.
세 번째는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1895~1990)의 견해로, 장소의 창조, 장식의 시작이 건축의 시작이라는 의견이다. 그에 의하면 동굴이 건축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사실 동굴은 좀 애매한 개념이지만(무형태, 공간적 비분절, 시간의 비분절은 동굴의 비건축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루이스 멈퍼드에 의하면 벽화가 그려진 공간은 다른 장소와 달리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따라서 다른 공간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장소성(sense of place)'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인위적 조작의 시작이 동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건축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쿠마 켄고(Kengo Kuma, 1954~ )의 의견으로 수직성, 형태 등 '구축의 시작'이 건축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선돌은 중력을 일부러 거스르는 행위며, 고도의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였다. 따라서 이런 행위는 특별한 의도성인 '기념비성monument' 을 지닌다.
쿠마 켄고도 이것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얘기하지는 않고, 건축의 기반이 되는 '구축'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구축이 좀 더 복잡해지면 구조가 되고, 더 나아가 건축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번째 주장은,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거장 한스 홀라인(Hans Hollein, 1934 ~ 2014)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을 둘러싼 비물질적 환경도 건축이라고 주장하였다.
좌측은 개념적인 작품으로 폐소공포증 환자를 위한 알약이다. 이것을 먹으면 폐쇄공포증이 나아진다고 한다.
우측은 TV-Helmet으로 어디서든 이것을 쓰면 portable living room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두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은, 실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내가 인지하는 공간이 진실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즉 실체를 가진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비 물리적 환경도 건축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TV-Helmet같은 경우는 현대의 VR 기계와 상당히 흡사하고, 그들은 상당히 앞선 얘기를 하고 있던 것 같다.
3. 재료와 구조
근대 이전에 가장 많이 쓰인 건축 재료는 돌과 나무이고, 추가로 흙이다.
콘크리트는 근대의 재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로마시대부터 쓰여왔다. 판테온도 콘크리트도 만들어져서 거대한 내부 공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류로 사용되지는 않다가, 19세기 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건물을 쌓는 방식은 가구식과 조적식이 있다. 나무는 인장력이 강해서 가구식 구조에 유리하며 동아시아에서 유행했고, 돌과 벽돌은 압축력에 강해서 조적식에 유리하여 유럽에서 유행했다. 물론 한계가 있지만 조적식 통나무 집도 가능하고, 돌로 만든 가구식 구조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파르테논 신전이 돌로 만든 가구식 건물이다. 참고로 원래 신전들은 나무로 지어졌는데, 파르테논 신전은 영원한 재료인 돌로 지어졌다고 한다.
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는 텐트식 구조가 있다. 텐트식은 주로 유목민(사하라, 이슬람, 몽골, 아메리카 인디언 등)에 의해 많이 지어졌다.
이런 텐트도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폴대를 세우고 인장력을 이용한 텐트가 있고, 틀을 견고하게 완성시킨 후 천을 그냥 얹어놓은 구조가 있다.
19세기 이후가 되면 철과 유리, 철근콘크리트가 즐겨 사용된다. 이들 모두 이전부터 써오던 재료였지만, 산업혁명 이후 더 값싸게, 구조체로 쓸 수 있게 기술이 발전했다는 차이가 있다. 유리 또한 이전에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쓰이는 조각조각 붙이는 유리가 아닌, 더 큰 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콘크리트의 압축력에 강한 특징과, 철근의 인장력에 강한 특징을 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철근콘크리트이다. 처음에는 토목분야에서 사용되었으며, 생김새가 못나서 잘 쓰이지 않다가 점차 철근콘크리트로도 기념비적인 건물을 지어보려는 건축가가 나타나게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Le Courbusier, 1887 ~ 1965)는 콘크리트에 관한 탐구를 많이 했다. 철근이 들어가면서 콘크리트를 가구식 구조에도 쓸 수 있었다. 조적식 구조(벽식 구조)는 벽 전체가 구조를 지탱해야 하므로 창을 크게 낼 수 없었는데, 가구식은 기둥으로 지탱을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만들기 유리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것은 새로운 건축 재료인 철근콘크리트로 가능했다.
빌라 사보아가 그 대표적인 걸작인데, 필로티로 1층이 뚫려있고 2층도 옆으로 긴 창이 나있으며, 이는 벽식구조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요즘은 굉장히 당연하지만 이 당시 철근콘크리트의 활용으로 이런 형태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콘크리트의 가소성(Plasticity)에 주목했다. 틀에 넣고 붓는 것이 콘크리트의 주조 방법이므로, 이로써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 형태의 실험이 진행되어 롱샹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를 이어받아 60년대에는 동경 올림픽의 현수구조, 철을 연결한 구조체인 돔이 굉장히 큰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재료와 구조에서 최근의 경향은 기술과 재료의 고성능화로 인한 다양한 재료의 실험, 그리고 digital form과 비정형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4. 인류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서 크게 변화한 시기가 신석기 혁명 즈음인 기원전 10,000년이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이 시기 즈음하여 신석기로 나아가는 지역이 생긴다.
또한 대략 10,000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척박한 빙하기를 지나 지구에 봄이 오니 인류에게는 약간의 여유가 생겨난다. 동물도 많고, 열매도 많이 생기고, 여유가 생겨 이것저것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석기가 발생했다는 의견도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의 시대는 갈아서 뾰족하고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신석기의 성과 중 하나는 나무를 벨 수 있다는 것이다.
5.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건축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석기는 약 250만 년 전이다. 기원전 약 1만 년 전 시기 전까지를 구석기 시대라고 한다. (참고로 최초의 인류는 약 700만 년 전에 등장했으며, 현생 인류는 2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수렵, 채집 생활을 했으며 주로 동굴 등에 거주했다.
구석기 시대는 아직 나무를 벨 수 없었고, 주거지는 shelter에 가깝다. 자연의 동굴을 그대로 사용하여 주거하였으며, 나무와 식물 잎 등을 활용한 임시 주거인 움막(hut)도 나타난다.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약 1만 년 전 빙하기 종료 이후 시기이며, 자연의 사이클을 인식하여 시간의 개념이 발생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와서, 경작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그릇도 만들기 시작했다. 건축 또한 나무를 잘라서 더 튼튼한 집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8천 년 경에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으로 농경이 시작되었으며,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구석기 시대 처럼 동굴 주거뿐 아니라, 지상 주거, 수혈 주거(움집), 천막 주거, 수상 주거 등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다.
위 그림은 신석기 시대 예리코(Jericho)의 정주지 유적이다.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일원으로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이런 형태의 건축물이 빨리 나타났다. 핵볕에 말린 흙벽돌을 세운 구조이고, 물탱크로 추정되는 요소도 발굴되었다. 농성을 위한 저장소일 수도 있고, 물이 부족한 지역이므로 오아시스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강 상류 지역 중 카탈휘익이 발달한 곳들이 몇몇 나타난다. 집들이 뭐가 한 집인지 모르게 복잡하게 붙어있고, 벽에 창이 거의 없다. 문도 잘 안 보이고, 사다리를 부니 지붕으로 사람들이 오갔던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출입구가 지붕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조적으로, 기술이 발달하지 않을 시기라 이렇게 튼튼하게 지은 것이고, 문을 찾기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방어에 유리한 구조이다.
6.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성소
죽음에 대한 신비감과 두려움, 자연 현상에 대한 경이감, 생산활동의 성공에 대한 기원 등으로 성소가 나타난다.
구석기 시대의 성소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BC 17,000 ~ BC15,000 경), 프랑스 라스코 동굴 등 쉘터였던 동굴이 곧 성소로 사용되었으며, 예술(벽화 등 그림)을 사용하여 쉘터를 의미 있고 특별한 장소로 바꾸었다.
신석기시대 성소는 거석 구조물인 선돌(menhir), 고인돌(dolmen), 환상 열석(cromlech)등이 있다. 기능별로 나누었을 때는 기념비(monument)와 무덤(tomb)로 나눌 수 있다. 선돌은 기념비이며, 고인돌은 무덤이다.
성소에서 숭배하는 대상은 보통 땅과 하늘이 있다고 하는데, 말타의 사원은 땅을 그 대상으로 한다. (하늘을 숭배하는 대상으로 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스톤헨지가 있다.) 말타의 사원은 기념비(monument), 무덤(tomb)도 아닌 종교의식 장소(temple)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죽은 자를 위로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톤헨지로 대표되는 거석문화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며, 이 때는 서로 교류하던 시기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각 지역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스톤헨지의 1차적 목적은 천상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축복하는 것, 부차적 목적은 죽은 자에 대한 기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