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ploring the World of Perception: The world of Perception and the World of Science, Maurice Merleau-Ponty, Routledge, 2004, pp.39-45.>

아래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책 중 The world of Perception and the World of Science(39-45p.)를 필자가 스스로 번역해가며 읽고, 생각한 것들입니다.
지각의 세계, 즉 우리의 감각과 일상 생활에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세계는 첫눈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측정하거나 계산할 필요가 없으며 단순히 눈을 뜨고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이 강의를 통해 우리가 실천적이거나 공리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한, 인식의 세계는 상당 부분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이 세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문화가 필요했고, 근대 미술과 철학(즉, 50~70년대의 예술과 철학)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지만 항상 잊어버리기 쉬운 세상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 우리가 잘 안다고 착각하는, 지각의 세계. 메를로 퐁티는 우리가 살고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세상을 재발견했다. 이제 읽어보자.
이러한 유혹은 특히 프랑스에서 강하다. 프랑스 철학뿐만 아니라, 다소 느슨한 의미에서 프랑스 정신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과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우리가 살아온 세계 경험이 대조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빛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확실히 물리학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빛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지 않은가? 빛은 한때 생각되었던 것처럼 불타는 발사체의 흐름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에테르의 진동인가? 아니면 더 최근의 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형태의 전자기 복사와 함께 분류될 수 있는 현상인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의 감각과 논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왜 우리는 색상, 반사 및 그러한 속성을 지닌 대상에 대해 우리의 지각이 말하는 것에 대해 머뭇거려야 하는가?
실제 세계는 빛과 색의 세계가 아니며, 내 눈앞을 지나가는 것은 육신의 광경freshy spectacle이 아니다.
실제 세계는 오히려 과학에서 이러한 감각적 환상 뒤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파동과 입자로 구성된다.
>>> 우리가 왜 빛에 대한 문제에서, 지각을 떼어놓고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과학자의 체계적인 조사, 즉 그들의 측정 및 실험만이 우리를 감각의 망상에서 자유롭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들은 : 거의 확실히 껍데기에 불과한 것 같다.
데카르트는 과학적 조사의 결과를 참조하지 않고, 감각적인 대상들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을 통해, "나는 내 감각이 나를 속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내 지성intellect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고"라고 까지 말했다.
나는 한 조각의 왁스를wax 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왁스는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그 색이 흰색이 아니며, 이것이 유지된다면 꽃 향기도, 내가 만졌을 때의 부드러움도, 떨어뜨렸을 때 내는 둔탁한 소리도 아니다. 이러한 특성 중 어느 것도 왁스를 구성하지 않는 이유는, 예를 들어 내가 그것을 녹이면 더 이상 식별할 수 없는 냄새가 없고 더 이상 내 만지면 저항할 수 없는 무색 액체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전히 같은 왁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러한 상태 변화를 통해 지속되는 것은 특성이 없거나, 기껏해야 특정 공간이 채워지거나, 채택된 모양이 어떤 식으로든 미리 결정되지 않은 채 공간을 점유하고 다른 모양을 취할 수 있는, 특정 능력이 없는 물질의 조각이다.
이것이 바로 왁스의 진짜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왁스의 진정한 본질은 나 혼자만의 감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특정한 크기와 모양의 물체만 나에게 제시되기 때문에, 내 눈으로는 왁스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왁스의 실재는 오직 지성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왁스를 보고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정말로 하고 있는 것은 내 감각 앞에 나타나는 속성들로부터 벌거벗은 현실 속의 왁스, 그 자체로는 속성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의 근원인 왁스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 그리고 이 생각은 오랫동안 프랑스 철학 전통에서 지배적이었다 – 지각은 과학적 지식의 혼란스러운 시작이 더 이상 아니다. (왜냐면 지각과 과학은 구분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지각과 과학적 지식의 관계는 현실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지성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존엄성에 합당하며, 지성만이 우리에게 세상의 실재를 드러낼 수 있다.
>>> 감각으로는 대상을 지각할 수 없다는 데카르트의 주장. 그에게 지성, 생각이 지각의 필수적인 요소였고 그렇기 때문에 대상의 진정한 본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지성만을 통해 세상의 실재가 드러난다.
앞서 현대 예술과 철학이 우리가 인식하는 인식과 세계를 회복시켰다고 말했을 때, 물론 나는 그것이 기술 발전의 수단으로서나 과학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확성과 진리에 대한 실질적 교훈을 제공한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증명하는 방법, 철저한 조사를 수행하는 방법,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선입견을 비판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지금과 같이 과학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여전히 적절하다.
과학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시점에 과학이 모든 해답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좋은 일이었다.
현대 철학이 과학과 관련하여 묻는 질문은, 그 존재의 권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탐구에 대한 특정 방법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과학이 우리에게 완전하고 자급자족하며 어떻게든 스스로 폐쇄된 세계의 그림을 제시하여 이 그림 외부에 의미 있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특정 결과는 고전 물리학의 법칙과 같은, 법칙으로 귀결된다.
이 질문은 과학에 대한 적대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로 하여금 이 질문을 하도록 강요하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특히 가장 최근의 발전에서 과학 자체이다.
>>> 데카르트의 의견을 부정한다고 해서 데카르트 시기에 위대하게 받아들여지던 과학을 나쁘게 보려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과학자들은 그들의 법칙과 이론이 자연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정밀한 조사를 통해 연마될 예정인 자연 사건의 훨씬 더 단순한 도식적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즉, 이러한 법칙과 이론은 근사에 의한 지식을 구성한다.
과학은 관찰 과정에 본질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완료될 것이라고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분석 형식에 우리 경험 데이터를 종속시킨다.
과학의 사명은 구체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에 대한 끝없는 해명을 수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 구체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은 더 이상 고전적 패러다임에서처럼 과학적 사고가 능가하는 단순한 외양이 아니다.
>>> 과학은 감각적인 것을 끊임없이 해명해야 한다. 지성과 감각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 사고는 더이상 감각보다 더 중요한 것, 더 위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고전적 패러다임 내에서 작업한 전임자와 달리 사물의 핵심,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꿰뚫고 있다는 환상을 더 이상 품지 않는다.
상대성 물리학은 각각의 특정 관찰이 관찰자의 위치와 엄격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특정 상황에서 추상화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객관성이 단순한 꿈임을 확인한다.
그것은 또한 절대 관찰자의 개념을 거부한다.
>>> 데카르트 시기의 고전적인 패러다임에서 통용되던, 과학에서 '확실한 진리'가 존재하여 사물을 꿰뚫는다는 환상을, 오늘날에는 더이상 품지 않는다. 또한 절대적인 관찰자라는 개념은 현재 거부된다.
우리는 더 이상 과학에서 순수하고 근거 없는 지성을 행사하면, 마치 절대자가 보듯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 대상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내가 반박하고 싶은 유일한 것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의 독단주의'이다.
>>> 그렇지만 과학은 여전히 중요하며, '과학 독단주의'가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 경험의 다양한 요소, 특히 감각 지각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과학과 과학철학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왔으며, 회화, 시, 철학은 우리에게 매우 새롭고 특징적인 현대적 시각을 제시함으로 써 과감하게 나아가고 있다.
사물, 공간, 동물, 심지어 인간의 모습까지도 우리의 지각 영역에 나타나는 그대로이다.
2. 읽고 질문하기
데카르트의 의견을 비판하는 메를로 퐁티의 의견은 탄탄하고 그럴싸 하며, 필자도 이 페이퍼를 읽의면서 무의식중에 메를로 퐁티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퐁티의 개념도, 어쩌면 데카르트에 의해 재반박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이성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