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데이비드 하비, 한울, 2013, pp.27-63.> 읽기

>> 읽으면서 느낀 점은 책이 너무 저세상 번역이라,, 직접 인용도 하면서, 내가 이해한 언어로 바꿔서 적어본다.
아래는 데이비드 하비의 책 중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챕터를 필자가 스스로 읽고, 생각한 것들입니다.
* 직접인용과 변용이 혼재되어있습니다.
보들레르는 '모더니티의 한쪽은 찰나적, 일시적, 우연적 측면이며 다른 한쪽은 영원불면한 측면'이라고 기술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
미학운동으로서 모더니즘의 역사는 이러한 이중구조 속에서 이쪽저쪽으로 동요해 왔기에, 저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이처럼 일시적 순간성과 영원불변성을 서로 결합시킨 데 주목했다.
모더니티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인 것은 불안정함이며, 나아가 '총체론적 혼란'에 대한 선호임을 대부분의 '모던'한 학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모더니티의 규정이 어렵게 된다. 모더니티가 모던 사회 이전의 질서 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조차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일회성으로 인해 어떠한 역사적 연속성도 보존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더니티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적 상황과의 가차 없는 단절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단절행위와 분절화 과정을 그 특성으로 삼는다.
아방가르드는 급격한 동요와 재생, 그리고 억제를 통해 연속성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역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그렇지만 이는 결국 레이번의 말처럼 "현란한 조각들이 아무런 관계 없이, 아무런 결정적, 합리적, 경제적 틀거리 없이 그저 가득 들어차 있는 편집광의 스크랩북"과 같은 유형으로 분절화 되었다.
그렇다면 시공간에서의 사회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내재된, '영원불변한' 것에 대해 설득력을 부여하기는 커녕 과연 어떻게 일관성 있는 느낌을 포착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계몽사상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철학적이며 실용적인 답변을 제시하였다.
하버마스(Habermas)가 얘기하는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18세기동안 전면에 등장하였다.
'모더니티 프로젝트'란, 계몽사상가들이 객관적 과학, 보편적 도덕률, 자율적 예술들이 본연의 논리를 따라 발전되도록 하기 위해 구사한 독특한 지적 노력을 말한다. 예컨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배는 우리를 희소성, 결핍, 자연재해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합리적 형태의 사회조직과 사고방식의 발전은 신화와, 종교, 미신이라는 비합리성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
이렇듯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휴머니티의 보편적이며 영원불변한 자질이 발현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다.
계몽사상(Cassirer, 1951의 설명에 따름)은 진보관을 담고 있었으며, 모더니티를 탄생시킨 과거 역사 및 전통과 단절하고자 적극 노력했다. 이는 지식과 사회조직의 탈신비화, 탈신성화를 추구한 세속화운동secular movement였다. 인간의 창조력이나 과학적 발견, 개인적 성취의 추구가 인류 진보란 이름으로 예찬되는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계몽주의자들은 일시성과 찰나성, 분절성을 모던화 프로젝트를 이룩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조건으로 보았다.
당시의 낙관론은 터무니 없는 기대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예컨대 하버마스에 따르면, 콩도르세 같은 자들은 '예술과 과학이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력뿐만 아니라 세계와 자아의 이해, 도덕적 진보, 제도의 정의, 심지어 인류의 행복까지도 드높이리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고있었다고 평한다.
이러한 낙관주의를 뒤흔든 것은 20세기의 대학살, 군국주의, 암살대, 두 차례의 세계대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핵파멸의 위협이었다.
심지어 계몽 프로젝트는, 인간해방에 대한 요청을 '인간 자유화'라는 이름 아래 행사되는 보편적 압제 체계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겨난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Adorno & Horkheimer)의 과감한 명제로, 히틀러 집권기의 독일과 스탈린의 러시아라는 시대 배경에서, 그들은 계몽의 합리성 아래 숨겨진 논리가 다름 아닌 지배와 압제의 논리라고 설파했다.
'자연 지배'의 욕망은 결국 '인류 지배'를 내포하며, 이는 결국 '자기 지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한 자연(nature)의 저항은 ,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저항으로 인식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생성되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계몽 프로젝트는 그 출발부터 카프카식 세상(Kafkaesque world)으로 퇴락할 운명을 지니는가?
- 이는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를 낳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가?
- 계몽 프로젝트는 오늘날의 사상과 행위들을 계도하고 자극할 여력이 남아있는가?
이에 대해 계몽 프로젝트를 꾸준히 지지하는 이들도 있으며(대표적으로 하버마스), 또 한편으로는 인간 해방을 위해 모든 계몽 프로젝트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주장(포스트모던 철학사상의 주류)으로 나뉜다.
계몽사상의 난해한 모순 중 하나는 유토피안 계획이다.
혹자는 유토피안 계획을 해방적이라고 보는 반면, 다른 이들은 종종 억압적이라고 보았다.
루소는 인류가 자유롭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으며, 계몽사상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유토피아를 그린 작품인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지식의 파수꾼과 윤리적인 법관, 진정한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현인들의 원로원을 꿈꾸었다.
반면 계몽사상의 후손이던 맑스는 이러한 유토피안 사고를 뒤집어 엎고서, 계급 규정적이고 모순투성이 압제의 자본주의 발존 논리로부터 어떻게 보편적 인간 해방이 싹틀 수 있는지 밝임으로써 유물론 과학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맑스는 인간 해방과 자유화의 주력군으로서 노동 계급에 주목하였는데, 이들이야말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력을 지녀야만 지배와 압제를 사회적 자유라는 영역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예컨대 에드먼드 버크(E. Burke)는 프랑스 혁명의 과잉 현상을 비판했고, 맬더스(Malthus)는 자연의 희소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역설하며 콩도르세의 낙관론에 반박하였다.
독특한 모더티니 논쟁의 발판을 마련한 비평가들이 두 명 있다. 바로 막스 베버(M. Weber)와 OO이다.
베른슈타인(Bernstein)이 정리한 베버의 주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베버는 계몽사상가들의 희망과 기대가 독설적이며 반어적인 환상이었다고 주장한다. 계몽사상가들의 과학의 발전, 합리성, 보편적 인류 자유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목적적, 도구적 합리성이 승리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러한 형태의 합리성은 경제구조, 법률, 관료행정,심지어 예술까지 포함하는 사회적-문화적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감염시킨다. 결국 목적적-도구적 합리성의 성장은 보편적 자유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관류주의적 합리성의 '철창'에 우리를 가둔다.
이러한 베버의 '냉철한 경고'는 계몽 이성에 대한 사망선고라면, 계몽 이성의 전제들에 대한 니체(Nietzsche)의 앞선 비판은 그것의 인과응보로 여겨진다.
니체는 오히려 '모던한 것들이란 삶과 권력에 대한 의지이자 무질서와 무정부, 파괴, 개인적 소외, 절망 등의 바다에서 헤엄치는데 필요한 원초적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히려 했다.
'지식과 과학에 의해 주도되는 근대적 삶의 배후에서 니체는 거칠고 야생적이며 무자비한 원초적 에너지를 가려냈다' (Bradbury & McFarlane, 1976)
즉, 문명이나 이성, 보편적 권리, 도덕성 따위에 대해 계몽주의적 상상은 쓸 데 없는 것이었다.
휴머니티의 영원불변한 본질은 디오니소스의 신화적 모습에서 가장 잘 표현되며, 즉 이는 '파괴적 창조 - 개별화와 생성이라는 시간적 세계를 만드는 일'와 '창조적 파괴 -개별화의 환상적 세계를 삼켜버리는 일' 라는 두가지 속성을 한꺼번에 지니는 것이었다.
'창조적 파괴'라는 이미지는 모더니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모던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에서 직면하는 실제의 딜레마들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전에 지나간 것들을 상당 부분 파괴시키지 않고서 도대체 어떻게 신세계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러한 딜레마를 담고 있다. 유물의 잿더미로부터 신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종교적 신화, 전통적 가치, 통상적 생활방식을 파괴해버리는 주인공 파우스트는, 결국 비극적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그는 '큰 계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바닷가의 오두막에 살고 있는 덕망 높은 노부부를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제2제국 당시 파리를 재건축한 오쓰망(Haussmann), 2차대전 후 뉴욕에서 활동한 로버트 모제스(R. Moses)등은 신화라기보다 위와 같은 창조적 파괴의 양상을 만들어 낸 수많은 근대의 인물들 가운데 몇몇이다.
경제학자 슘페터(schumpeter)는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을 설명하며, 기업가(enterpreneur)는 탁월한 창조적 파괴자라고 말한다.
또한 피카소도 이전까지 누구도 눈여겨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세계를 보여주며, 창조적 파괴의 양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특히 니체의 개입 이후 인간 본성의 영원불변한 핵심을 정의함에 있어서 계몽이성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게 되었다.
니체는 근대 생활의 순간성, 분절성, 그리고 그 혼란 가운데에서 영원불변한 것들을 살피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심미적 경험의 탐구'를 확립했다.
이렇게 새로운 방법론의 수단이 된 '심미적 경험의 탐구'는 문화적 모더니즘(cultural modernism)에 새로운 역할 및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다.
이처럼 새로운 모던 프로젝트인 cultural modernism에서, 예술가와 작가, 건축가, 작곡, 시인, 사상가, 철학자들은 각기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예술가란 당대 정신을 종합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과정을 불러 일으켜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즉 '창조적 파괴'가 모더니티의 필수조건이 되며 예술가는 그 주인공 몫을 맡게 된 것이다(비록 그 결과가 처참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루소가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고 바꾸며, 앞서 계몽주의자들의 목표 실현을 위한 합리적-도구적 전략이 의식적-미학적인 전략으로 급격히 바뀌었음을 알린다.
모더니티의 혼돈의 수렁 속에서 영원불변한 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은 도대체 무엇인가?
따라서 모더니즘은 그 시작부터 언어에 집착했으며, 영속적 진리에 대한 특수한 재현 양식을 찾는데 매진했다.
마네, 피사로, 잭슨 폴락 같은 화가들은 자신들이 구성한 어휘 속에서 새로운 약호나 기호, 은유적 암시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다. 말이라는 것이 그처럼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혼돈투성이라면, 그 때문에 예술가들은 즉석 효과들로써 영원함을 표현해야만 했다.
즉 '쇼킹한 기법과 짐작 가능한 연속성에 대한 위배'를 예술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근간으로 삼는 것이었다.
르코르뷔제는 '그들이 유지시키고자 그토록 애쓰는 균형은 결정적인 이유로 완전히 순간적이다. 즉 그것은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야 하는 평형'이라고 <미래도시>라는 소책자에서 밝힌다.
이렇게 균형을 '교란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미학적 판단 자체의 순간적, 일시적 성질들을 불러일으켰고 미학적 유행의 변화를 부채질했다.
인상파, 후기인상파, 입체파, 야수파, 다다, 초현실주의, 표현주의가 그것이다.
이를 놓고 포기올리는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유행을 창조시킴으로써 자신이 한때 경멸해 마지않았던 바로 그 대중성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야말로 끝이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고 언급한다.
예술작품 생산 경쟁로 인해, 모던 예술이 아우라 예술(auratic art)의 모습을 띄게 된다. 예술가들은 독점 가격으로 시장 유통이 원활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창조적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에 헌신하고 있다는 아우라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 결과 문화생산자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귀족적이고,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고 안하무인의 시각을 보였다.
그것은 기껏해야 대중에게 심오한 감동을 주거나 도전, 반전, 경탄을 자아내게 할 따름이었다. (이러한 측면을 깨닫고, 몇몇 아방가르드들-다다주의자들, 초기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대중문화와 결합시키려 시도했다. 발터 그로피우스와, 르 코르뷔제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생산함으로써 예술을 민중들에게로 되돌리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리 예술가들이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이라는 자신의 아우라를 선언한다 해도, 예술가의 사회적-정치적 역할의 변화는 당시 사회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모더니스트들은 그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변동과 변화에 대한 의식은 뒷전으로, 일상 생활에 등장하는 새로운 상품의 물결, 기술적 정확함, 작동의 신속함, 기계와 공장 시스템 따위에 매료되기도 했다.
따라서 1차대전 이전에 등장한 모더니즘은 새로운 생산조건(기계, 공장, 도시화)과 자본순환조건(새로운 교통, 통신체계), 소비조건(대량시장과 광고, 대규모 유행의 등장)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선구자는 아니었음을 상기해야한다.
1919년 창설된 독일 디자인 기구인 바우하우스는 초기에 모리스가 창설한 '예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영향을 받았으나 머지않아 1923년 '기계는 디자인의 근대적 매체'라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즉,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벗어나 사회와 관계맺기 시작한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기계의 효율성을 이용해 미학적으로 흡조ㄱ한 제품을 대량 생산해내는 기술을 '장인공예기술(craft)'로 재정의 하여 생산이나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대응 방식들은 모더니즘을 그토록 복잡하고 때로 모순된 것으로 만드는, 다양한 반작용이었다.
결국 모더니즘은 미래주의와 허무주의, 혁명과 보수,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특이하게 결합되게 된다(Bradbury & McFarlane, 1976)
이처럼 복잡한 모더니즘의 역사지리는, 모더니즘이 대체 무엇인가에 관한 해석을 두 배나 어렵게 만든다.
세계 대전의 발발은 모더니즘을 뒤흔든다. 모던한 주체들은 1914년 유럽 전역이 빠져든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영원성, 본질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인간의 완전무결함에 대한 계몽적 확신이 사라져 버렸으니, 모더니티에 적합한 새로운 신화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
예컨대 1920년대 <파리의 농부>라는 소설의 주요 목표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신화가 되는' 그런 소설을 세련화시키는 것이었다.
프램튼은 '르 코르뷔제는 한결같이 엔지니어의 미학과 건축 사이의 이분법을 해결함으로써 효용성에 신화라는 위계를 덧붙여보고자' 했다고 평가한다.
>> (요약)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분절성과 연속성 양 극단의 성격을 모두 가진다. 그렇다면 이토록 계속 변화하고, 파괴되는 시공간의 혼란 속에 인간 본성의 영원불변한 본질은 어떻게 포착되는가?
>> 계몽사상에서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건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가능.
>> 1848년 이후, 오직 하나의 재현양식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계몽사상의 범주적 확실성이 점점 거센 도전, 이는 수학 어휘의 암묵적 단일체계를 뒤흔들어놓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과도 흡사하였다. (P.23)
>> 20세기 니체의 개입 이후, 인간 본성의 영원불변한 핵심은 더이상 계몽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니체는 영원불변한 속성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으로 '심미적 경험의 탐구'를 제시한다. 그는 과학, 합리성, 정치 보다 우선하여 미학을 자리매김 시켰다. 이것이 문화적 모더니즘(cultural modernism)에 새로운 역할과 동기를 부여한다.
>> 이는 계몽주의자들에서, 예술가들로 모더니티의 주인공을 옮겨오게 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루소의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로의 변화.)
3. 모더니즘은 Ai랑 뭔가 되게 닮아있네?
어우 일단 여기까지만 읽고;; 드는 생각이다.
현재 AI는 논쟁이 많다. 예컨대 ‘인류의 삶은 더더욱 편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예찬론자도 있는 반면, ‘인류는 로봇에게 지배당한다’라거나, ‘우리의 일자리를 뺏앗기면 인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하는 회의론자들이 충돌하는 식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AI는 이미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누가 그것의 미래를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현재 AI가 이끄는 세상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며, 과연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이러한 거대 담론들은, 쉬이 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난관에 가로막혀 AI의 의의를 피상적으로 분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모더니즘의 역사와 흐름,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내포한 속성들이 AI를 둘러싼 여러 속성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측면들이 많다. 어쩌면 이러한 유사성에 기반해, 모더니즘의 역사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잘 살펴본다면, 아직 미지의 세계인 AI혁명이 불러일으킬 미래를 빗대어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AI가 주류로 등장한 시기가 2010년 중반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우리는 아직 변화의 초기 단계에 놓여있고, 따라서 초기의 모더니즘과 현재의 AI혁명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러한 기준으로, 모더니즘에서 AI혁명을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격변기의 모더니즘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며 진행되어 왔는데, 이는 AI의 작동 원리와 동일하다. AI가 대상을 분석하는 기법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것이 아니며, 조금씩 오차를 줄이면서 무한히 진행되는 알고리즘의 원리에 의해 그 이전의 모든 것들과 단절되는새로운 창조물이다. 심지어 같은 프로세스도, 알고리즘의 반복 횟수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며 무한히 재창조된다. AI에서의 무한한 파괴와 재창조는, 초기 모더니스트들이 했던 처절한 노력 없이도 가능한 것이며, 현재 인류에게 우연히 뚝 떨어진 축복이며 고대의 불과 같은 발견이다.
또한 과거 역사와 단절하려 했던 모더니스트들의 노력 역시 AI의 기본 원리와 동일하다. AI는 무수히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으며, 같은 목적을 지닌다고 해도 제각기 구체적 방법과 성능이 다르다. 따라서 같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AI도 그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계속 새로운 AI 프로그램의 도전을 받아 그 성능을 서로 겨루게 된다. 대표적으로, 바둑에서 흔히 떠올리는 알파고는 이미 새로운 AI 기반 바둑 프로그램들에 밀려나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은지 이미 꽤 되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것을 향한 프로그래머들의 무한한 노력은, 초기 모더니즘에서 나타나는 과거 역사와의 단절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유사성은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여러 방향으로 생각의 확장을 가능케한다. 예컨대, 모더니즘의 반작용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했듯이, AI에 대한 반작용은 어떤 세상을 불러 올 것인가? 오히려 AI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아날로그의 회귀로 이어질 수도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최근 한국에서 핫한 이슈였던 ‘레트로’ 문화의 유행은 늘 그렇듯 반복되어왔던 주기적인 문화의 순환(‘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단순한 역사)이 아니라, 아날로그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AI가 이끄는 고도로 기술집약적 사회의 반작용으로 이미 우리에게 나타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더니즘을 단일하고 명징하게 요약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듯이, 현재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AI혁명도 결국은 관점에 따라 더 큰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아니며, 여전히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의 고전적 분야가우리의 삶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더니즘과 AI혁명에서 드러나는 여러 유사성을 잘 살펴보면 우리의 생각이 더욱 확장될 수 있고, 그 결과 유의미한 통찰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4.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
텍스트 뒷부분에 나오는 것 같은데, 나중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