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 꼬르뷔지에
사실 르 꼬르뷔지에는 말로만 너무 많이 들었지, 그래서 오히려 깊이는 모르는 느낌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뭐 그런 느낌.
이번 기회에 꼬르뷔지에를 낱낱이 살펴보도록 한다.
(꿀팁) 참고로 '르 꼬르뷔지에'라고 안하고, '꼬르뷔지에'라고 부르면 약간 있어보이는 느낌을 낼 수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고 교수님들이 다 그렇게 부르더라...
2.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케네스 프램튼(송미숙 역), 마티, 2017> 중, '르꼬르뷔지에와 새로운 정신(pp. 428-442.)' 읽기

아래 내용을 필자가 해당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 프랑스 국경 라쇼드퐁에서 1887년 태생
- 10대 후반, 지역 미술공예학교에서 미술공예운동의 끝자락을 경험했다.
- 첫번째 주택 작업인 빌라 팔레(1905)의 유겐트슈틸(Jugendstil, =프랑스어로 아르 누보Art Nouveau) 방식

- 1907년 스위스 빈으로 이동. 쇠퇴해가는 유트겐슈틸에 대한 혐오로 그 전에 나타나던 장식적 요소가 많이 줄어든다. 르 꼬르뷔지에의 인생의 전환점으로, 그 해에 가르니에를 만났다. 결정적으로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을 방문하여 난생 처음 살아 있는 코뮌(민주적, 자율적,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의미하며,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생태주의의 궁극적 목표)을 경험했다. 후에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에 대해 묘사하길, "침묵, 고독 그리고 매일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접촉이라는 진정한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켜준 곳"
- 1908년 파리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들어감. 강화 콘크리트 기술에 관한 기본 훈련 + 프랑스 고전 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힘. 철근 콘크리트가 미래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1910년 독일행. 독일공작연맹과의 접촉으로 현대적 생산 공학, 선박, 자동차, 비행기 등의 성과를 의식.
- 1910년 말, 라쇼드퐁 교수직을 수락하여 독일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발칸 지역과 소아시아를 돌아보는 긴 여행을 하고, 그때부터 오스만 건축이 그의 작업에 약하지만 확실하게 영향을 미침.

- 1913년 라쇼드퐁에 철근 콘크리트 전문 건축사무소 설립.
- 1915년 소꿉 친구이자 엔지니어 막스 뒤부아와 함께 두 가지 개념 정립 : 도미노 주택(Maison Dom-Ino, 1935년까지 주택 작업에서 구조적 토대가 됨)과 필로티 도시(Villes Pilotis, 일종의 고가 도로 개념)

- 1916년 라쇼드퐁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최고의 성과인, 빌라 슈보브 탄생.

- 1916년 10월 건축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파리로 이주. 화가 아마데 오장팡을 알게되어, 그와 순수주의 기계미학을 발전시켜갔다. 이 미학을 완전히 공식화한 에세이 「순수주의」는 1920년 『새로운 정신』 4호에 실린다.
(위키백과 참고 : 순수주의 또는 퓌리슴(Purism)은 1918년 프랑스에서 오장팡과 르 코르뷔지에가 입체주의를 계승하여, 일어난 조형운동의 필요 없는 장식과 과장을 배격해, 조형미를 주장하였기에 기능성의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8%9C%EC%88%98%EC%A3%BC%EC%9D%98
순수주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 『건축을 향하여』 1923년 출간. 이 텍스트는 그가 주요하게 다룬 개념의 이중성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개념적 이중성이란, 한편으로는 경험적 형태를 통한 기능적 요구를 만족시켜야 할 필요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지성의 자양분이자 감각의 자극제인 추상 요소를 활용하려는 충동이다. 형태에 관한 변증법적 관점은 「엔지니어의 미학과 건축」에, 엔지니어 미학의 다른 국면인 제품 디자인에 관해서는 「보지 못하는 눈」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살펴보며, 파르테논에 드러난 기술공학의 정밀함을 찬미.

- 파리에서 활동한 처음 5년 동안, 르 코르뷔지에는 여유가 생길 때 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썼다. 낮에는 벽돌 및 건설 자재를 생산하는 공장 매니저로 생계를 유지함. 1922년 사촌 피에르 잔느레와 건축업을 시작하며 이 일을 그만 둔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1918년 ~ 1922년 까지 아무것도 짓지 않았다고 한다.)
- 개소 초창기에 그는 '도미노(Dom-ino) 주택'과 '필로티 도시' 개념을 발전시키는 일을 맡았다.
- 그는 도미노를 형태나 조립 방식 면에서 전형적인 제품 디자인처럼 그저 하나의 설비로 보기를 원했다. 『건축을 향하여』에서 쓰기를,
"집에 관한 모든 쓸모없는 개념은 지워버리고,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문제를 본다면 우리는 주택 기계(House Machine)에 도달할 것이다. 대량 생산된 주택, 우리 생활에 딸린 작업 도구들이 아름다운 것 같이 건강하고 (도덕적으로도 마찬가지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주택."
- 도미노 주택 제안들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 건설업계의 수준 낮은 환경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푸집 공사와 철근 외에는 미숙련 노동력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게 설계했다.
- 도미노 주택과 필로티 도시 개념은, '현대 도시'(Ville Conteporaine) 프로젝트에서 한층 더 발전된다. 여기서 지중해 지역의 메가론(megaron) 형태와 비슷한 한쪽 끝이 열려있는 긴 직선적인 볼륨의 시트로앙 주택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엔비크 프레임을 활용했다. 또한 메자닌 침실과 옥상에 아이들 침실을 갖춘 2층 주거 공간을 최초로 선보였다. 이는 그리스 토속 건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920년대 초 표준화된 주택을 위한 여러가지 디자인을 생산하려는 계속된 시도. 이는 페삭에서 최고조에 달하며, 페삭은 순수주의의 색채를 건축으로 전치시켜 의식적으로 통합한 첫 사례였다.


- 1922년, 300만 명이 살 수 있는 '현대 도시' 프로젝트. 미국의 격자형 마천루 이미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시를 둘러싼 그린벨트 보호 구역 너머로 공업 지대와 노동자를 위한 전원도시가 있는 행정력과 통제력을 갖춘 엘리트 자본주의 도시로 계획됨. '현대 도시'는 블록형 집합주택을 창안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 1927년, 로스의 질문인 미술공예운동에 입각한 설계의 비격식성과 편안함을 기하학적 형태의 무뚝뚝함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즉 어떻게 사적 영역의 현대적 편리함과 공적 파사드의 건축적 질서를 화해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한 해법으로 빌라 가르슈 설계. 자유로운 파사드를 생략해버리면, 복잡한 내부는 공적인 정면에서 떨어진 채 유지될 수 있다.

- 1927년 국제연맹 출품작이 보여주는 요동치는 비대칭성과 기술 혁신, 필로티로 받친 사무국, 청소 시스템의 기계화, 공기 조화 기능을 갖춘 회의실 등의 구축주의와 유사성은 정치적 신념에 상관없이 젊은 층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기념비성 - 각기 다른 계층의 사용자들을 강당 지정석으로 안내하는 위계 - 이 이념적 불신을 야기했던 것 같다.

- 엔지니어 미학과 건축 간의 이분법을 해소하고 유용성에 신화적 위계를 불어넣으려 한 르 코르뷔지에의 욕구는 1920년대 말 기능주의-사회주의 디자이너들과 갈등을 빚었다.
3. 읽고 나서 - 르 코르뷔지에의 공원의 몰이해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손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는 분명 건축사에서 큰 역할을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많은 텍스트들과 명징한 매니페스토들이 박제되어 있어 갖은 비판에 시달리기도 한다.
예컨대, '집은 살기 위한 기계' 라고 표현한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공격받는 내용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지나치는 부분을 지적하려고 한다. 바로 이 부분이다.
"도시 전체는 픽처레스크한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경사 제방(glacis)처럼 프롤레타리아 거주지인 교외와 엘리트 거주지인 도심을 구분 짓는다."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케네스 프램튼, 송미숙 역, 마티, 2017, p.288)
르 코르뷔지에가 (당대의) ‘현대 도시’를 제안하면서 도시의 시설 중 하나인 공원에 부여한 역할은, 계층에 따라 거주지를 구분하는 일종의 ‘경사 제방’의 기능을 할 뿐이다.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영국에서의 시작하는 공원 탄생의 배경을 가볍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원(park)은 그리 오래된 도시 시설이 아니다.
공원의 탄생 이전에는 정원(garden) 문화만이 존재했는데, 주로 지배계급의 거대한 정원이 가끔 공공에게 개방되며 '공원'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으나, 이는 대중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오늘날 도시의 공원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격한 도시의 팽창, 노동자의 스트레스 해소가 불가피하였고,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과 당대의 ‘변화된 자연관’이 결합하여 공원이 등장한다. 영국의 버큰헤드 파크(Birkenhead park)는 최초로 시민의 재정으로 만들어진, 현대적 의미로서의 '공원'이다.
또한 1875년 영국의 공중 위생법 제정 등 정치적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결합되어, 공원이 도시의 시설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러한 공원이라는 도시 시설은, 조경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에 의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옴스테드와 켈버트 보(Calvert Vaux)의 그린스워드 설계안(Greensward plan)이 1858년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어 만들어진 것이 결과물이, 바로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이다. 센트럴 파크는 1873년에 개장하게 된다.
이렇게 1800년대 후반 자리잡은 공원은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과연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 '현대 도시'를 제안할 때, 그는 당시 '현대 공원'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는가?
단언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과연 어떻게 공원을 '경사 제방'처럼 쌓아 도시를 구분 짓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공원의 기능은 경계를 나누고 계층을 구분짓는 것에 있지 않다.
그는 300만이 살 수 있는 현대 도시를 꿈꿨으나, 이렇듯 엘리트주의가 묻어나는 결과물들은 300만을 제외한 나머지는 계획에서 배제한 채 소수만을 위한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더니즘의 건축 대가로 손 꼽히며 기능주의를 향한 그의 원대한 찬미들이, 그리고 그러한 사유로부터 탄생한 작품과 텍스트들이, 이미 당대에도 도시의 중요 시설이 되었던 공원의 기본적 기능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깊이 실망했다.
4. 마스터피스와 매니페스토(Masterpiece and Manifesto)
건축의 대가가 되려면, 마스터피스와 매니페스토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 그런 건축가가 있냐고 하면 대부분 수졸당이라는 마스터피스, 빈자의 미학이라는 매니페스토를 남긴 승효상을 떠올린다. (그런데 유현준이 아이러니하게 역사상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가 되었는데ㅋㅋ. 이 부분은 지금 판단하긴 좀 이른 것 같고 일단 어떻게 굴러가는지 주시하고 있다.)
매니페스토가 필수적이라는 것에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뭔가 씹을 거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뭐든지 스스로 말하고 뽐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별로 관심 안 갖는다.
건축 분야보다 확장해서 생각했을 때도, 마니페스토 없이 마스터피스로만 유명해지려면 대단한 관종이거나 기구한 운명이 필연적인 것 같다. 뭐 결국 반고흐도 죽어서야 유명해졌고.
모더니즘 건축의 4대 거장으로 왜 르 코르뷔지에가 꼽히는지 잘 몰랐었는데, 이제 보니 텍스트를 굉장히 많이 만들어냈고 명징한 스스로의 매니페스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스터피스는 뭐 두말할 것 없고.
하 조경계에도 이런 인물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니까 지금 새벽에 블로그 글 쓰는 이 과정도 나의 매니페스토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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